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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와 아마추어

솔티22 2021. 5. 4. 14:33

  전성기 시절 장타로도 유명했던 타이거 우즈는 공칠 때 찰떡 치는 소리가 났다. 금속 클럽과 단단한 공이 부딪히는데 쫀득쫀득 찰떡을 때리는 것 같았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우즈의 임팩트 순간을 보면 단단하던 공이 반쯤 클럽에 짓눌렸다가 '푱' 하고 튕겨 나갔다. 요즘 미국 PGA 투어에선 몸무게를 20kg 불려 헐크처럼 변신한 브라이슨 디샘보가 남다른 소리를 낸다. 국내 남자 골프에는 그만한 선수가 없었는데, 메이저리거 박찬호에게서 그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제대로 맞으면 미 PGA에 내놓아도 10등 안에 들 장타다.

 

  어린 시절 스윙의 기본을 익히지 못한 보통 주말 골퍼는 거리 300야드는 꿈도 못 꾼다. 그런데 박찬호는 마음먹고 때리면 370야드를 친다. 그는 "왼발을 축으로 공을 던지는 투구 메커니즘이 왼발을 축으로 체중을 이동하는 골프 스윙과 닮았다"고 했다. 185cm 의 키에 탄탄한 몸매을 가진 박찬호는 올해 마흔여덟인데 20~30대 프로골퍼 100여명 사이에 세워 놓아도 가장 운동선수 같아 보였다.

 

  지난 주말 군산 CC 오픈에서 한국 KPGA 1부 투어에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나선 박찬호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진 이가 적지 않았다. 워낙 남다른 장타 능력에다 메이저리그에서 124승을 거둔 승부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53명 중 꼴찌로 컷 탈락했다. 미 프로농구의 3점슛 도사 스테픈 커리, 미 프로풋볼의 명쿼터백 토니 로모 같은 선수도 미PGA 2부

투어와 1부 투어에 도전해 컷을 통과한 적이 없다. 다른 스포츠의 최고수에게도 '프로 골프의 벽' 은 높기만 하다.

 

  같은 골프장이라도 주말 골퍼가 치던 때와 전혀 달라지는 게 프로 대회 코스다. 페어웨이는 좁게, 러프는 길게, 그린은 빠르고 단단하게 만든다. 하루 6언더파를 쳤다고 자랑하던 아마 고수가 프로 대회에서 공 한번 제대로 못 쳐보고 벌벌 떨다 보기 플레이도 못 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이번 대회처럼 강풍이 불면 어프로치 샷과 퍼팅도 다른 차원으로 변한다. 자신감 잃은 장타는 러프나 물로 향하기 일쑤다.

 

  박찬호가 골퍼 지망생인 큰딸에게 조언을 했더니 "프로도 아니면서···"라고 대꾸하더란다. 그래서 프로 골퍼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세 딸을 둔 그는 "골프는 뭘 해도 사랑스러운데 마음대로 안 되는 셋째 딸 같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 성적은 꼴지였지만 흥행 몰이는 했다. 여자 골프의 인기에 눌린 한국 남자 골프였는데 흥행으로만 본다면 박찬호가 구원 투수 역할은 한 것 같다.

 

2021.05.03(월) / 조선일보 / 민학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