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엔 특허권이 없다'
미국 의학자 조너스 소크는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 전 세계적으로 소아마비 환자가 한해 수십만 명씩 생길 때여서 그는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백신 특허권을 포기하고 백신 생산법을 공개했다. "이 백신 특허권은 누구에게 있느냐"고 묻자 그는 "특허권은 없다. 태양에도 특허권이 없지 않느냐"는 말을 남겼다. 덕분에 인류는 소아마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백신 부족에 허덕이면서 백신 특허권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세계무역기구(WTO)는 다음 주 코로나 백신 특허권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도 지난해 코로나 백신을 개발할 때 백신 기술 공개에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최근 미 무역대표부(USTR)에 백신 특허 유예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등 전직 국가 정상과 노벨상 수상자 등 석학 175명도 얼마 전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같은 의견을 담은 공동 서한을 보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생명이 달린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상당하고 논리도 단단하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먼저 백신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향후 백신 개발의 싹을 자르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논리다. 특허를 보장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제약사가 큰돈 들여 신약을 개발하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화이자·모더나 등 백신 개발회사들은 최근 USTR 등과 가진 비공개 회의에서 중국·러시아에 핵심 기술이 넘어갈 것이라는 점을 들어 특허 포기에 반대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엔 뜻밖에도 빌 게이츠도 있다. 그는 자선재단을 통해 코로나 백신 개발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그가 특허 유예에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안전성이다. 특허를 푼다고 백신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저품질 백신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백신 개발회사들이 신속하게 대량 생산해 공급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장이다.
국내 전문가들도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신기술을 적용해 생산에 고도의 기술과 공장, 인력이 필요하다"며 특허를 푼다고 곧바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는 기대는 금물이라고 했다. 이런 우려와 논리를 인정하더라도 지금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라도 백신 공유라는 비상수단이 필요하다는 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와 제약업계가 이에 대한 대비는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2021.05.04(화) / 조선일보 / 김민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