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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15만 원' 예비군

솔티22 2021. 12. 9. 14:14

  한 해 최대 180일을 복무할 수 있는 '장기 비상근 예비군' 제도가 내년부터 새로 시행된다. 평일과 휴일 구분 없이 하루 15만 원이 지급된다. 근무일을 꽉 채우면 2700만 원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30인 미만 중소기업의 평균 초임 연봉인 2772만 원과 얼추 비슷한 금액이다. 예비군으로 반년만 일하면 이 정도 목돈을 만들 수 있으니 일부 전역자들에게는 솔깃한 이야기일 수 있다.

 

  종전에도 비상근 예비군 제도는 있었지만 연 최대 15일만 일할 수 있는 단기 아르바이트 성격에 그쳤다. 하지만 7일 예비군법과 병역법 개정안이 공표되며 근무 기간이 대폭 늘었다. 180일간의 근무는 한 번에 이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쪼개기 복무'로 이뤄진다. 부대가 우선 근무 기간을 정하지만 대원과 협의해 조정할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는 지원이 어렵겠지만 배달 플랫폼 노동자처럼 근무 조정이 자유로운 직군은 가능할 것이다. 내년 2월에 처음 선발한다니 조만간 헬멧과 철모를 번갈아 쓰는 '투잡 예비군'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비상근 예비군 제도가 도입된 것은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면서 현역병 충원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군 동원사단의 경우 평시에는 소수의 인원으로 유지되다가 전시가 되면 예비군이 충원돼 100% 전력의 부대로 바뀐다. 그런데 평소 이 부대에서 근무하는 현역병 비율이 8% 남짓까지 떨어지면서 전투 대비 태세 유지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자 예비군을 투입해 부족한 인원을 채우는 것이다. 2033년이 되면 한 해 충원 가능한 현역병 인력이 필요 인원인 30만 명을 밑돈다고 하니 예비군 투입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내년에 단기 예비군은 3700명, 장기는 50명 채용되는데 이런 규모가 2024년에는 단기 4500명, 장기 600명까지 늘어난다. 육군으로 시작해 공군, 해군, 해병대로도 확대된다. 포병, 정비, 통신, 보급 등 분야뿐 아니라 예비군이 늘어나면서 중·소령급 참모도 선발돼 부대 체계를 갖추게 된다. 예비군은 군기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합지졸이란 인식도 있었다. 확대되는 '직업 예비군'이 이런 오명에서 벗어날지도 지켜볼 일이다.

 

  군은 내년부터 비상근 예비군을 모집하면서 기존처럼 장교와 부사관뿐만 아니라 사병 출신도 받기로 했다. '두 번 군대가는' 기회가 모든 전역자게 열린 셈이다. 취업 한파 속에서도 채용 인원이 확대되는 예비군 자리는 괜찮은 중·단기 일자리로 각광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비상근 예비군은 전시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전투에 투입되는 엄연한 군인이다. 사명감 없이 일자리만 쫓다간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피해가 갈지 모른다.

 

2021.12.09(목) / 동아일보 / 황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