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총'을 든 경찰관
경찰이 내년부터 '저위험 권총'을 보급한다. 플라스틱 탄을 써서 살상력이 낮다. 현용 총기인 38구경 리볼버 대비 위력은 10분의 1이다. 범죄자를 총기로 완벽히 무력화하기 보단, 일시적으로 운동능력을 떨어뜨려 체포하는 게 목표다. 총을 쏠 때 대퇴부 아래를 겨냥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이런 총기가 고안된 이유가 있다. 아예 맞는 사람이 죽을 일 없는 '약한 총'을 줘 과잉진압 논란 여지를 없애겠다는 얘기다.
한국 경찰은 약한 총을 줘야 할 정도로 총을 함부로 쏠까? 반대다.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8월부터 1년간 전국경찰의 총기 사용은 14건이 전부였다. 매뉴얼을 보면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찰은 피의자 저항 정도를 '협조'에서 '치명적 공격'까지 5단계로 나누는데, 이 중 피의자가 총기·흉기·둔기로 경찰관이나 3자에게 사망이나 심각한 부상을 일으키려는 때(5단계)만 총기를 쓸 수 있다. 매뉴얼만 보면 시민이나 경찰관에게 총칼로 위해를 가하기 전엔 탈주범에게도 총을 못 쓴다.
피의자 저항에 비례해 경찰 대응이 뒤따르니, 현장 경찰관이 위험을 예측해 선제 대응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범죄자 공격은 단계적으로 세지지 않는다. 1단계 저항이 바로 5단계로 격화할 수 있는 게 범죄 현장이다. 이번에 파주에서 경찰관 세 명이 흉기에 찔린 사건도 가정폭력 신고에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총기로 피의자를 무력화하더라도 그 경찰관은 감찰 조사를 받는다. 여론에 약한 경찰의 감찰은 '유죄 심증'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장 호소다.
문제의 핵심은 '총의 위력이 아니다. 경찰관이 두드려 맞고 칼에 찔려야만 대응이 시작되는 현행 매뉴얼, 조직이 조직원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후속처리가 문제다. 이런 문제를 고치지 않고선, 총을 휴대한 경찰관이 날붙이 든 범죄자에게 휘둘리는 일은 반복된다. 경찰 수뇌부가 여론 공격에서 조직원을 지키겠다는 배짱을 가져야 하고, 그 결기를 지켜줄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저위험 권총을 준다고 치안 현장이 고위험에서 저위험 환경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2025.05.27(화) / 한국일보 / 이영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