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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출동한 장진호 참전 부대

솔티22 2025. 6. 20. 10:35

  "우린 적이 아니라 국민이에요. 당신들 지금 해병대 선서를 어기는 겁니다. 정신 차려요." 1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연방청사 앞. 이민자 단속 반대 시위대가 50여 명 해병대 병력과 대치했다. 시위대 선두에 선 변호사는 해병대원들에게 '군인의 도리'를 일깨웠다. 군의 의무는 국민을 진압하는 게 아니라,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거라고. 그가 언급한 미 해병대 복무 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모든 적에 맞서 미합중국 헌법을 받들고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군인이 존경받는 미국에서,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해병대가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던 이 장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례적 결정에서 시작됐다. 트럼프는 LA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연방 자산 보호를 명목(해외 대사관도 해병대가 지킨다)으로 해병대를 투입했다. 현역 해병대가 국내 치안에 투입된 것은 1992년 LA 폭동 이후 33년 만이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LA로 간 해병 700명은 해병1사단 7연대 2대대다. 한국과 관련이 많은 부대다. 1950년 9월 인천에 상륙한 뒤 서울 수복에 기여했고, 극한의 날씨에 장진호로 진격했다. 1개 중대가 중공군 수천 명의 공격을 5일간 버티며 1,000여 명을 사살한 '덕동고개 사수전'의 F중대가 2대대 소속이다. 6·25기간 대대가 받은 명예훈장은 8개. 미 해병대가 한국에서 받은 전체 명예훈장(42개) 중 5분의 1이 2대대에서 나왔다.

 

  미국이 관여한 전쟁엔 빠짐없이 참여한 명예로운 선봉부대가 자국민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안타깝다. 외신을 보면 현장 부대의 사기가 높지 않다고 한다. 적 대신 동료 시민을 상대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적을 타격하기 위해 고된 훈련을 이겨낸 최정예 부대가 자국 국회 봉쇄에 투입됐다. 군인의 명예와 자존심은 이처럼 지도자의 이기적 판단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군인이 도리를 다할 환경을 보장하는 것도 군통수권자의 중대한 책무다.

 

2025.06.20(금) / 한국일보 / 이영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