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만의 '7월 더위' , 논밭-공사장 덮친 '살인 폭염'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짧은 장마가 지나고 예년보다 빨리 더위가 덮쳤다. 이른 아침 출근 시간대부터 기온이 30도를 넘어 숨이 막혀 온다. 8일 경기 광명과 파주에선 낮 기온이 한때 40도를 넘었다.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7월 초순이 이렇게 덥기는 117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20세기 최악의 더위'였던 1994년에서 '21세기 최악'이라던 2018년까지 20여 년이 걸렸는데, 이젠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치명적 여름이 연이어 찾아오고 있다.
체온보다 높은 불볕더위에 사람이 온전할 리 없다. 일사병,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8일 하루 환자가 200여 명에 달했고, 올해 누적으론 1200명을 넘어서 지난해의 배가 넘는다. 본격적 한여름 더위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온열질활으로 8명이 사망했다. 7월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국적 일용직 근로자가 앉은 채로 숨을 거뒀다. 8일 충남 공주와 서산에서는 논에서 일을 하던 노인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젠 '살인 더위'가 단지 비유적 표현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폭염에 쓰러지는 건 작업장의 근로자나 노약자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서울에선 상대적으로 선선한 오전 시간에 야외에서 운동하던 30, 40대 청장년층 온열질환자가 더 많았다. 햇볕이 뜨거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최대한 야외 활동을 피하고, 30분마다 10분 이상 그늘에서 휴식해야 한다고 질병관리청은 권고한다. 전국 시도교육청과 대구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양산 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양산을 쓰면 체감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찍 시작돼 더 길게 영향을 미칠 폭염은 우리 일상을 짙게 할퀸다. 폭염에 농작물이 타들어 가면서 수박 등 여름 과일·채소류 가격이 벌써 들썩이고 있다. 가축이 쓰러지고 양식장 어류도 폐사하니 축산물과 수산물 가격도 걱정이다. 에어컨 사용이 늘면서 시민들은 벌써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고 있다. 일일 최대 전력 수요가 이미 7월 말~8월 중순 수준인 90GW(기가와트)를 넘어서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자칫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폭염에 따른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배달 기사, 건설 근로자, 농민 등은 아무리 더워도 땡볕에 일손을 놓기가 어렵다. 냉방기 가동이 쉽지 않은 쪽방촌 주민, 홀몸노인, 장애인, 노숙인 등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는 무더위는 생존의 위협이 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높을수록 온열질환자 밀도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폭염이 살인 무기가 되지 않도록 야외 근로자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25.07.10(목) / 동아일보 / 김재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