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와 블랙리스트
2년 전 봉준호 감독이 영화 '옥자'로 칸 영화제 경쟁 부분에 처음 진출했을 때 프랑스 통신 AFP가 서울발로 그의 인터뷰를 다룬 적이 있었다. '블랙리스트에서 블록버스터로'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봉 감독은 지난 정권을 돌이켜 "많은 한국의 예술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악몽 같은 몇 년간이었다"며"영화계 누구나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 꼬집을 수 없었다"고 했다.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블랙리스트'였다. 당시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를 맡았던 그 역시 세월호 조사 지지 영화인으로 분류돼 리스트에 올랐다.
봉 감독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든 것은 박근혜 정권에서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가 낸 조사보고서를 보면 영화인들은 유난히 이명박 정권에서 감시와 배제의 타깃이었다. 당시 국정원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82명 중 60명이 영화인이었는데, 봉 감독을 포함해 이창동, 박찬욱, 문성근, 권해효, 문소리, 김민선, 유준상 등이 망라됐다. 정권 초기부터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대중적인 파급력이 높은 영화를 집중 단속하려고 분주했던 결과였다.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보고서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지목한 상업영화 15편의 목록과 이유가 나온다. 봉 감독의 작품으로는 '살인의 추억''괴물''설국열차'가 포함되어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호평받은 이 작품들을 두고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며 국민 의식을 좌경화"(괴물)한다거나 "공무원.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살인의 추억)한다고 평가한다.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설국열차)고 단정했다.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한 학자로 자주 인용되는 토머스 에머슨 미국 예일대 교수는 "자유로운 토론을 억제"할 경우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은폐"해 결국 "사회를 불가피하게 분열과 대립, 그리고 파괴의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했다. 블랙리스트라는 역경을 거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쾌거를 거둔 봉 감독을 보며 에머슨의 말대로 지난 정권의 문화예술인 억압이 결국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낳아 결국 그 정권의 몰락까지 불렀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2019.05.28(화) / 한국일보 /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