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칸데르
20세에 왕위에 올라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은 호칭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중동 지역에선 이스칸데르(Iskan-
der)로 불렸다. 원래는 '알이스칸데르'로 발음이 됐는데 아랍어의 알(AL)은 영어의 더(The)처럼 정관사로 쓰여서 '알'을 뺀 '이스칸데르'가 이름인 줄 알고 사용되다 그대로 굳어졌다.
러시아가 1996년 새 단거리 전술 탄도미사일을 이스칸데르로 명명한 데에선 알렉산더가 세운 대제국에 버금갔던 옛 소련에 대한 향수가 엿보인다. 미국과 소련은 1987년
12월 중거리 핵전략조약(INF)으로 사거리 500~5,500km의 지상 발사형 중거리 탄도.순항 미사일 폐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해 모스크바를 사정권에 둔 미사일을 배치하자 러시아도 대응 차원에서 이스칸데르를 개발했다.
서방 세계는 긴장했다. 최신형인 이스칸드르-M은 일반 탄도미사일보다 낮은 저고도(50km)를 마하6.1의 속도로 순항한다. 그러다 목표지점 근처에서 급상승했다 70도 각도에 마하 10이 넘는 속도로 낙하하는 회피 기동을 해 요격이 어렵다. 핵탄두도 탑재 가능하다. 러시아는 사거리가 450km로 INF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나 미국은 실제 사거리가 600km를 넘는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이달 초 쏘아올린 발사체는 모양과 성능이 이스칸데르 판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은' 무기라고 애써 외면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분명해 보인다.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무기를 시험해 본 것"이라고 평가햇다. 우리 군 당국은 여전히 분석 중이다. 중요한 건 '신무기'가 남한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의 최신형 페트이럿(PAC-3 MSE) 미사일을 도입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의 탄도 미사일 '현무-2' 역시 이스칸데르 기술이 적용돼 제작됐다는 점이다. 이스칸데르 기술은 2001년 러시아제 무기 도입 당시 함께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가 이스칸데르 기술을 남북한에 모두 판매한 셈이다. 한반도 분단과 대결로 이익을 얻는 것 주변 강대국들이다.
2019.05.31(금) / 한국일보 /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