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씨와 민폐씨
올 초 자유한국당 입당 한 달여 만에 '친박'을 등에 업고 당권을 쥔 황교안 대표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 원장에 김세연 의원을 임명한 것은 의외였다. 복당파이자 비박계인 그를 요직에 발탁해 계파 화합 의지를 과시하려는 뜻으로 읽혔지만 질시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이후 그는 신주류로 분류됐으나, 6월 초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황 대표가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하려면 종로 출마를 결단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말해 다시 눈길을 끌었다. 한국당을 떠난 민심을 잡으려면 지도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이런 주문은 여연이 다양한 '꼰대 탈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산업화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대다수 보수세력이 민주화 시대를 보낸 40·50대를 끌어안고 번영의 끝물만 맛본 20~30대를 이해하려면 '셀프 디스'를 감수하고라도 시대 변화에 걸맞은 소통 능력과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당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아무리 유익하고 좋은 이야기라도 세대간 주파수가 다르면 소음에 그칠 뿐"이라며 "선배 세대의 노고와 희생은 강요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헌신으로 존중받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지도부 사퇴와 당 해체를 요구하자 한국당이 호떡집에 불난 것마냥 시끄럽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고 "생명력을 잃은 좀비이자 버림받은 정당"이라는 찬물을 뒤집어썼으니 "먹던 우물에 침 뱉는 내부 총질"이라는 불만이 들끓는다. 하지만 더 아픈 것은 그가 "감수성도, 공감 능력도, 소통능력도 없고, 비호감도는 역대급 1위니 도태만 남았다"며 파산선고를 한 대목이다. 최근 30~40대 당협위원장들의 쇄신 요구에 지도부가 "배후 색출"로 대응한 것이 '거사'의 결정적 계기였단다.
요즘 한국당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좀비와 민폐를 빗댄 자조적 인사가 유행이라고 한다. "당과 동료를 풍비박산내고 혼자만 스타된" 김 의원을 향해 모종의 거래설을 제기하는 등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평소 그답지 않게 거칠고 모욕적인 발언이지만 '좀비씨와 민폐시'만 넘쳐나는 한국당에 충격을 주려 했다면 상당 부분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밥상을 차려주어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우왕좌왕하는 정당"(오세훈 전 서울시장)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 답은 단식이니 말이다. 좀비씨와 민폐씨, 밤새 안녕하신지요?
2019.11.21(목) / 한국일보 / 이유식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