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전쟁
삼국지의 3대 전쟁은 관도대전과 적벽대전, 효정전투다. 원소와 조조가 맞붙었던 관도대전과 유비와 손권이 연합해 화공으로 조조를 물리친 적벽대전은 그럴 만한 이유와 전략이 있었다. 반면 유비가 오나라를 공격하면서 일어난 효정전쟁은 그 결과가 뻔했다. 전략적으로 전쟁을 해야 할 명분이 약했고 선방을 날린 유비의 작전과 전술도 허술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유비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벌인 배경엔 도원결의한 의형제 관우의 죽음이 있다. 약 1년 반 전인 서기 219년 12월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는 조조와 손권의 협공에 패했고 포위를 뚫고 도주하다가 오나라에 잡혀 참수됐다. 유비는 관우를 죽인 오나라에 분노했고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정 길에 올랐다. 청년 때부터 유비를 따랐던 조자룡과 핵심 참모 제갈공명조차도 막지 못했다. 이 전쟁은 유비가 제갈공명과 만나 큰 그림을 그렸던 융중대책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손권과 손잡고 조조를 물리친 뒤 천하를 통일한다는 게 융중대책의 골자다. 유비의 분노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분노의 전쟁'은 초반엔 유비 군이 기세를 높였지만 지략이 뛰어났던 오나라 육손의 지구전에 이은 화공으로 승패가 갈렸다. 유비는 많은 장수와 병사들을 잃고 영안으로 퇴각했고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그곳에서 최후를 맞는다.
미국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중동 사태는 효정전쟁의 망령을 되살린다. 솔레이마니는 이란인에게는 관우 같은 인물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란인 10명 중 8명 이상이 그를 지지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보다 높은 인기다. 중동 시아파들도 그를 우상으로 여긴다. 미국과 이란 모두 부담이 커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영웅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잇다. 솔레이마니 죽음이 촉발한 중동의 정세 불안이 심각한 이유다.
2020.01.10(금) / 매일경제 / 장박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