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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솔티22 2020. 1. 17. 14:56

  노무현 정부 당시 '버블세븐'이란 신조어가 유행했다. 집값에 거품이 낀 7개 지역이란 뜻으로,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 용인시, 안양시 평촌을 가리켰다. 연이은 정부 대책에도 집값이 폭등하자 청와대는 2006년 6월 "집값이 많이 오른 이들 7곳은 거품이 낀 것"이라고 했다. 이후 버블세븐은 노무현 정부의 주 타깃이 되었지만 집값은 더 올랐다.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부동산 매매 허가제' 발언에 대해 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이 어제 라디오에 나와 "검토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시장경제에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매매 허가제가 강 수석 개인의 의견이었는지, 실제로 청와대 내 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청와대 수석이 하루 만에 주워 담을 폭탄 발언을 한 것은 시장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냉탕''온탕'을 반복했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이 급등하자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30여 차례나 대책을 쏟아냈다.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 종합부동산세 같은 굵직한 규제들이 이때 다 만들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정부의 완패였다. 노무현 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 값은 57%, 전국은 34% 뛰었다. "하늘이 두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고 공언한 노 전 대통령이지만 "부동산 문제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며 실패를 자인했을 만큼 부동산은 난제(難題)였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그린벨트에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공급 확대 정책이 예상을 뛰어넘는 효과를 내 임기 후반기엔 건설 경기가 과도하게 추락햇다. 부동산 경기 냉각으로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부동산 매매 허가제는 자유시장경제 국가는 물론이고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거의 시행된 적이 없다. 호주에서 일부 도입된 적이 있지만 그 대상은 외국인이었다. 헌법상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많고 시장 왜곡을 부추길 수 있어 대다수 전문가는 도입에 반대한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바닷물은 절대 먹어선 안 되는 것처럼, 정부가 다급하다고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위헌적 정책까지 섣불리 거론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긴다. 정책이 실패했으면 정책방향이 올바른지 짚어보고 고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방향을 고집하며 더 황당한 정책을 내놓는다. 시장이 뭔지 아는 이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제 매매 허가제 발언에 대해 시장이 어이없어하며 보인 첫 반응은 "허가제 되기 전에 강남 집 사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였다고 한다.


2020.01.17(금) 이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