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공짜가 아니었다. 덴마크는 발트해의 좁은 길목인 외레순 해협을 틀어쥐고 배마다 값을 매겼다. 1429년부터 400년 넘게 통행세를 걷어 막대한 부를 챙겼다. '바다의 톨게이트'로 한때 나라 곳간의 3분의 2를 채웠다. 훤히 뚫려 있는 바닷길에도 주인이 따로 있었다. 힘으로 바다의 규칙을 정하면 그만이었다. 안전하게 해협을 건너려면 그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 힘의 논리에 '자유'라는 이름을 붙였다. 네덜란드 법학자 휴고 그로티우스는 1609년 '자유해론'에서 누구도 바다를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타깃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항행의 자유'를 내걸고 양국의 해상 독점을 겨냥했다.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바다로 뻗어 나가던 네덜란드의 국익을 정당화할 근거로 삼았다. 이후 해상패권을 장악한 영국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항행의 자유가 관습으로 굳어져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에 담겼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한 172개 당사국이 이를 받아들였다. 모두에 이익이 되는 질서였다.
미국이 새로운 질서의 보증인을 자처했다. 자유로운 바다는 패권의 통로와 같았다. 세계 어디로든 미군을 투입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차질 없이 유지하려면 바다가 사방으로 뚫려 있어야 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기지화하고 대만을 포위해 압박할 때마다 군함을 보내 항행의 자유 작전에 나섰다. 바닷길을 위협하는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미국이 관철한 힘의 질서가 보편적 원칙과 규범으로 불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은 반사이익을 누렸다.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됐다. 선박 140척이 매일 오가던 곳이 기약 없는 전쟁에 막혔다. 핵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바다로 번지면서 항행의 자유에 대한 오랜 믿음이 깨졌다. 이란은 적과 친구를 나누며 "전쟁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각국이 내야 할 통행세가 연간 150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은 흥해 항로까지 차단할 참이다. 이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건널 수 없을지 모른다. 바다의 질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2026.03.31(화) / 한국일보 / 김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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