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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식 '펜스룰'

  "여성이 왜 거기 있었나?" 공조직에서 성폭력·성추문이 발생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22년 야근을 하던 서울 신당역 여성 역무원이 동료였던 남성에게 스토킹 살해를 당했을 때, 서울교통공사가 내놓은 대책은 여성 직원의 당직 횟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여성 비서를 성추행한 사실이 들통 나 자살했을 때, 유족 변호인은 "여비서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거칠게 말하면 "여성을 치우라"는 것. 이른바 '펜스룰'이다. 미국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가 2002년 '더 힐' 인터뷰에서 "아내 아닌 여성과는 1대 1로 저녁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10여 년 뒤 펜스는 발언이 왜곡됐다고 해명했지만 '펜스룰'은 남성을 '성폭행·성추문 가해와 무고'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2018년 '미투' 운동 때의 '회식 2차 금지령'도 같은 맥락. 술을 곱게 마시면 될 텐데, 무단횡단할지 모른다며 통행금지령을 내린 격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제기한 정원오 전 서울 성동구청장의 멕시코 출장 의혹의 중심에도 "여성이 왜 거기 있었나?"가 있다. ①휴양지 칸쿤을 경유해 귀국한 점 ② 여성 직원이 수행했는데 구청 담당자가 출장 서류에 남성으로 표기한 점 ③ 해당 직원이 2년 6개월 뒤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해 채용된 점을 버무려 정 전 구청장과 직원이 '부적절한 관계'일 수 있다는 '냄새'를 피웠다. 냄새의 근원은 직원의 성별.

 

  의혹이 사실이어서 정 전 구청장이 해당 직원에게 특혜를 주고 구청장 권한을 사유화했다면, 서울시장이 되기엔 중대한 결격 사유다. 규명해야 한다. 김 의원이 여성을 차별하고 모욕하는 방식으로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는 자극적 스토리를 썼을 뿐, 팩트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의 스토리 안에서 여성들은 업무 능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출장 기회를 따내는 존재다. 이런 유의 오해가 겁나는 사람들은 '여성 직원 출장 수행 금지령'을 내릴 것이다. '김재섭룰'이라고 불러야 할까.

 

2026.04.07(화) / 한국일보 / 최문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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