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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천하제일 단타대회장

  개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천하제일 단타대회장'이라 부른다. 유튜브에는 무림고수가 비기를 펼쳐 놓듯 단타 비법을 전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가치투자는 실종됐다. 당일 샀다 파는 데이트레이딩은 2024년 상반기 기준 전체 거래량의 58%를 차지한다. 전체 단타의 71.3%가 개인 투자자 거래다. 6·3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테마주까지 가세하면서 이른바 '국장'은 사실상 '투전판'이 되는 모양새다.

 

  관세전쟁 리스크가 커질대로 커졌는데, 정치테마주는 10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이 나오는 등 나 홀로 '불장'이다. 줄곧 오르기만 하면야 좋겠지만 급등한 뒤 연일 폭락하는 종목이 부지기수다. 오른 이유도 내린 이유도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묻지마 투자를 했다 '깡통'을 차도 원망할 데가 없다. 기업 내부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경영진 등 내부자들이 보유 주식을 대량 매도해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치테마주는 원래 공약에 따라 수혜가 예상되는 이른바 '정책주'를 공략하는 매매기법이었다. 성격이 변질된 건 2007년 대선에서 '인맥주'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이번 대선에선 유독 인맥주가 기승이다. 기업 관계자와 주요 대선 주자가 혈연·지연·학연이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주가가 출렁인다. 대개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는 '지라시' 수준의 허위 정보들이지만 시장을 뒤흔든다.

 

  인맥주가 고평가받는 상황은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권력에 의한 특혜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어서다. 정치 불신이자, 행정·경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시장 참여자 다수가 기업의 미래 가치가 권력과의 친소관계에 좌우된다고 믿는다면 기업이 기술 경쟁력 강화와 혁신에 힘을 쏟기나 하겠는가.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신뢰와 투명한 제도가 경제 성장의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건 '주가 5,000시대' 장밋빛 공약이 아니라 정치와 행정·시장의 투명성 강화와 신뢰 회복이 아니겠는가.

 

2025.04.25(금) / 한국일보 / 이동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