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슈퍼스타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 대표팀 빅토르 안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휩쓸었을 때 다수 국민은 박수를 쳐줬다. 조국을 버렸다는 비난은 소수였다. 그가 러시아로 귀화한 직접적 이유는 부상과 소속팀(성남시청) 해체 여파로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하고 오갈 데 없어진 탓이다. 하지만 그 즈음 드러난 빙상계 파벌싸움과 짬짜미 승부 조작은 "운동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말의 속뜻을 알게 했다. 빅토르 안을 향한 응원은 대한빙상연맹을 향한 질타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배신자"로 비난당하고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쇼트트랙 편파 판정에 국민 분노와 반중 감정이 치솟으면서 중국 대표팀 기술 코치로 합류한 그에게 불똥이 튀었다. 안 코치는 8일 SNS에 "제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나 사실 아닌 기사로 인해 가족을 향한 무분별한 악플이나 욕설은 삼가 달라"고 밝혔다. 비리의 희생자로 동정을 샀던 빅토르 안은 이제 불공정한 권력의 일부로 간주된다.
중국팀은 계주 터치를 못하고도 금메달을 따고, 다른 나라 선수는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실격당하는 이런 판정은 홈 어드밴티지라기엔 분명 지나치다. 대한체육회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와 국제올림픽위원장에 대한 항의 등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정치인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김치 원조 논란, 고압적인 외교 자세, 중국 관광객 행태 등을 거론하며 중국 수준을 폄하하는 말도 쏟아진다. 하지만 우리가 우월감을 느끼기엔 안 코치를 향한 악플과 중국인 혐오가 섬뜩하다.
누구보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한국 선수들에게 "정당한 승부를 한 당신이 이겼다"고 말해 주고 싶다. 동시에 안 코치에게 쏟아지는 악플 역시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역시 중국 대표팀 일원으로서 혜택을 봤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판정에 대한 책임까지 묻기는 어렵다. 새삼스레 "기술 유출" "매국"이라며 비난하는 것도 그만두어야 한다. 한국의 국격은 그렇게 지켜야 하지 않을까.
2022.02.09(수) / 한국일보 /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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