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오상배 전 수방사령관 부관(대위)은 이 발언을 두 차례 했다. 처음은 비상계엄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게 전화로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지시하는 걸 들었을 때, 두 번째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뒤에도 윤 전 대통령이 "두 번, 세 번 계엄 하면 된다"고 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앉아 젊은 군 간부의 증언을 들었다.
오 대위는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기자회견에서 "체포의 '체' 자를 얘기한 적도 없다"고 말한 것을 듣고는 "배신감 같은 걸 느꼈고"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돼야겠다"는 마음에 검찰에서 진술하게 됐다고 했다. 앞서 조성현 수방사 제1경비단장, 김형기 특전대대장 등 현장 군 간부들도 헌법재판소나 법원, 검찰에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런 증언들이 쌓여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윤 전 대통령은 전날 SNS를 통해 '국민께 드리는 호소'를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기습적인 대선 후보 교체 시도가 당원들에 의해 제지된 직후다. '정당 민주주의의 파괴'란 비난을 받는 국민의힘의 단일화 논란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여전히 건강함을 보여준 경선"이라는 상식 밖의 평가를 내놨다. 그러면서 "제 마음은 여전히 국가와 당과 국민에게 있다" "끝까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당의 후견인으로 여기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원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된 것도, 국민의힘이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진 것도 윤 전 대통령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은 이번 호소문에서 당원과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의 행태가 대선을 목전에 둔 국민의힘에 점점 부담이 되고 있는 형국인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당의 단결을 촉구하고 대선 승리를 외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일반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지상을 통해 법정에 들어오도록 법원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과 관련해 국민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전날 '호기로운' 호소문을 발표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윤 전 대통령이 진정 어린 사과를 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2025.05.13(화) / 동아일보 / 장택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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