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베껴쓰기

미국 가는 특사의 트럼프 대처법

  '특사(特使)' 외교의 시작은 헤이그 특사다.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비밀리에 급파했다.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대한제국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역대 정권은 상대국과 관계를 회복하는 승부수로, 때론 막힌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돌파구로 물밑에서 특사를 요긴하게 활용해 왔다.

 

  특사는 대통령 당선 이후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조율을 위한 소통 채널이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둔 2003년부터 공식 임명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거물 정치인 박근혜·정몽준 의원을 각각 중국과 미국 특사로 낙점했다. 일본에는 친형 이상득 의원, 러시아에는 실세 이재오 의원을 보냈다. 박근혜 당선인은 미국보다 중국에 먼저 특사를 파견한 첫 사례다. 인수위를 거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에 특사를 확정해 미·중·일·러 외에 유럽연합(EU), 독일과도 접점을 넓혔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EU 특사에 치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대 14개국에 특사를 파견한다. 취임 한 달이 지나 다소 늦었지만, 규모로는 전례 없이 압도적이다. 새 정부 들어 안정을 되찾고 정상화된 한국의 국제사회 복귀를 널리 전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그 중 핵심은 단연 미국이다. 파격적으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특사에 내정했다. 한미 관계 전문가 대신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나드는 정치 원로를 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물었다. 그는 "우리가 말한대로 될 것이라는 건 착각"이라며 "우왕좌왕하는 트럼프를 잘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 들어 소위 자주파니 하는 사람들에 대해 미국에서 걱정을 좀 할것"

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1990년 소련과 수교 당시 활약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거대 국가를 상대할 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막무가내로 관세를 올리고 방위비를 더 내라는 트럼프다. 동맹 한국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느냐에 특사외교의 성패가 달렸다.

 

2025.07.14(월) / 한국일보 / 김광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