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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건강 이상

  "멜라니아와 내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 2일(현지시간) 새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윗으로 자신과 아내의 코로나 확진 사실을 알리자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미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대통령 유고(有故) 시의 권력 승계 절차, 후보 사망 시 투표의 유효성 등 논쟁거리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말 한마디로 세계의 정치·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 대통령의 건강은 중대 관심사다. 분초 단위로 짜인 일정,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는 언론 등 '가혹한' 업무 환경 때문인지 육체적·정신적으로 병고에 시달렸던 백악관 주인은 수두룩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앉아 집무를 봤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젊은 미국의 기수로 사랑받았지만 정신자극제를 남용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중 알츠하이머 치매가 발병했다. 미국 듀크대 연구팀은 1776~1974년 재직한 미국 대통령 절반(49%)이 우울증, 불안 장애 등 정신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2006년)를 내놓기도 했다.

 

대통령의 건강 이상을 감추려는 백악관의 행태도 오래됐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심장 발작으로 입원했지만 백악관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배탈'에 걸렸다고 설명했다.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기까지했던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공보담당은 언론에 대통령이 아프다는 소문은 '말도 안 되는 소설'이라고 발뺌했다. '솔직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그로버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언론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친구의 요트를 빌려 종양 제거 수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병세를 추적하는 미국 언론과 이를 덮으려는 백악관의 숨바꼭질도 치열하다. "상태가 좋다"는 의료진의 공식 입장과 달리 입원 직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산소호흡기를 낄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입원 중인 대통령이 3일 트위터에 동영상을 올려 "지금은 나아졌다"고 건재를 과시했지만 모습은 눈에 띄게 수척했다. '10월 서프라이즈(대선 전달 10월에 터지는 대형 사건)'의 주인공도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될 모양이다.

 

 

2020.10.05(월) / 한국일보 /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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