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과 영혼' 에서 남녀 주인공 페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는 삶과 죽음이 엇갈린 청춘 남녀를 연기해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에서 두 사람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배우가 우피 골드버그다. 이승의 여자와 저승의 남자를 연결하는 영매(靈媒)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위험한 정사' 에서 열연한 글렌 클로스는 때론 조연이 주연 못지않게 영화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관객들은 남자 주인공을 맡은 마이클 더글러스보다 유부남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를 연기한 클로스를 오래 기억했다.
메릴 스트리프는 할리우드 최고 명배우이지만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연상 후보로 17번 올라 두 차례 수상했고 조연을 맡아 이 부문 후보로도 4차례 이름을 올렸다. 아카데미 21차례 후보 기록은 그녀가 유일하다. 이 중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 조연상을 받았다. '카사블랑카' 에서 험프리 보가트의 연인으로 열연했던 잉그리드 버그먼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받고 우리 나이 예순에 '오리엔트 특급살인' 으로 조연상을 추가했다.
배우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미나리' 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우리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로 처음 아카데미 문을 두드린 이후 반세기 넘도록 수상은커녕 본선도 오르지 못한 변방 신세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이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고, 이번엔 배우에게 주는 상까지 연거푸 받았다. 한국 영화의 쾌거다.
윤여정은 '미나리' 로 수십 번 상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틀에 박힌 수상 소감을 거부하며 '윤여정 신드롬' 을 일으켰다. 빛나는 유머 감각과 촌철살인 명구로 시상식장을 장악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도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는 말로 관객의 허를 찔렀고, 이어 "내가 어릴 때부터 훌륭한 연기를 봤던 글렌 클로스를 이길 수 있겠는가.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각자가 승자"라는 참신한 소감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영화 소재가 된 미나리는 메인 요리라기보다는 다른 요리에 곁들였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식재료다. 복어 국물에 넣으면 풍미를 더하고 삼겹살에 곁들이면 누린내를 없애준다. 여름에 자란 미나리보다 겨울 혹한을 견딘 미나리가 맛 좋고 향도 많다. 영화에서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미나리를 심으면서 "미나리는 원더풀(Minari is wonderful)"을 반복한다. 평생 조연으로 살아오다 아카데미의 빛이 된 그녀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2021.04.27(화) / 조선일보 /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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