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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이상한 세제 혜택 기준

  서민 지원을 위한 세제 혜택 기준들 중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최근엔 자동차세 차등 부과에 적용되는 배기량 기준이 또다시 논란이다. 국회 구자근 의원(국민의힘)에 따르면 현재 국산 그랜저 승용차의 연간 자동차세는 64만9,000원으로 그랜저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BMW5시리즈 수입 승용차는 51만9,000원으로 그랜저보다 13만 원이나 적다. 수입 프리미엄 승용차 세금이 '국민차'보다 더 싼 희한한 '조세 역전'이 벌어진 것이다.

 

  자동차세 부과기준이 배기량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현행 자동차세는 비영업용인 경우 기본적으로 배기량에 세액을 곱해 산정한다. 1,000cc 이하는 cc당 80원, 1,600cc 이하는 cc당 140원, 1,600cc 초과는 cc당 200원을 곱하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배기량 2,497cc인 그랜저의 세금이 1,998cc인 BMW5 시리즈보다 높게 매겨질 수밖에 없다. 같은 산식에 따라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등 다른 수입차 자동차세도 그랜저보다 낮게 나온다.

 

  납득이 어려운 건 국민주택 면적 기준도 마찬가지다. 국민주택 규모는 현행 주택법상 전용면적이 1세대당 85㎡ 이하인 주택으로, 아파트 평형으로 치자면 33평형까지 해당된다. 서민 지원 차원에서 주택 대출 시 저금리 혜택을 비롯해 농어촌특별세 비과세,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부가세 면제 등의 혜택이 부여된다. 하지만 30억 원까지 치솟은 서울 강남의 33평형 아파트에 비해, 수도권 비인기 지역은 45평형이라도 고작 10억 원 남짓인 현실을 감안하면 면적만 따지는 방식 자체가 비현실적인 셈이다.

 

  좋은 취지의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불합리가 빚어지는 경우는 비단 자동차나 국민주택 관련 세제뿐만 아닐 것이다. 주택 공시지가 제도부터 대학입시의 수시전형을 둘러싼 불공정 시비, 각종 정부 조달 사업체 및 보조금 지원 대상자 선정 시스템의 불합리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돌아봐도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거창한 개혁 못지않게 민생제도의 작은 불합리를 바로잡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2021.06.04(금) / 한국일보 /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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