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재판에서 '기습 추행'이라는 낯선 용어가 튀어나왔다. 변호인이 "(오씨의 행위는) 충동적, 우발적, 일회성인 기습 추행"이라며 강제 추행 치상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치 총을 정면으로 겨눠 피해자를 공포에 빠뜨린 뒤 쏘면 살인죄가 되지만, 느닷없이 쏴버리면 무죄라는 식이다. 오씨 재판 기사에는 '행동도 더럽게 했지만 변호도 더럽게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기습 추행은 법원 판결문에 나오는 용어다. 피해자가 예상할 틈도 없이 불쑥 신체를 만지는 범죄를 뜻한다.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뒤 저지르는 일반 강제 추행과 구분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습 추행도 강제추행죄로 처벌한다.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수치심을 주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기습 추행 판례는 다양하다. 회사 대표가 노래방에서 여직원에게 "힘든 것 있으면 말하라"면서 허벅지를 쓰다듬었다가 유죄가 됐다. 피해자 옷 위로 가슴이나 엉덩이를 더듬는 행위, 교사가 여중생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거나 여학생 귀를 만지는 행위 등도 처벌받았다.
오씨는 일과 시간에 집무실로 피해자를 불러 강제 추행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며 자인했다. 그러나 법정에선 기습 추행은 죄가 안 된다며 감형을 노린다. 꼼수는 또 있다. 변호인은 "오씨가 사건 후 치매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뒤 '시장직 사퇴는 총선 이후에 한다' 며 공증까지 받은 오씨가 치매라는 걸 누가 믿겠나. 변호인은 "(오씨가) 힘없는 노인"이라고도 했다. 오씨는 부산시장 재직 당시 팔굽혀펴기 대회에 나가 138개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때 동영상이 지금도 유튜브에 떠있다.
오씨는 재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삶, 반성하고 자숙하며 살겠다"고 했다.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오씨는 눈앞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훗날까지 대비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 그는 작년 영장 실질심사 때 "혐의는 인정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 한 자락 깔아두며 재판에서 형량을 낮출 궁리를 했을 것이다.
오씨의 혐의는 강제 추행 미수, 강제 추행, 강제 추행 치상 등 섬범죄 3단계 세트다.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이달 말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유죄를 선고한다면 오씨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예상하지 못한 '기습 판결' 은 무효라고 우길 것인가.
2021.06.13(수) / 조선일보 / 금원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