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베껴쓰기

정년연장 vs 고용연장

    "고용연장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 작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고용노동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한 말이다. 앞서 2019년 10월 노인의 날에 대통령은 "어르신들이 더 오래 종사하실 수 있도록 정년을 늘려가겠다"

고 했다. 맥락은 같은데 '정년연장'이란 용어가 4개월여만에 '고용연장'으로 바뀌었다.

 

  60세 정년을 시행한 지 4년밖에 안 됐는데 정년을 또 늘리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경제계는 반발했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비판까지 쏟아지자 이재갑 당시 고용부 장관은 "고용연장과 정년연장은 다른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법을 고쳐 정년을 높이고 의무로 적용하는 게 정년연장이라면 고용연장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 등을 통해 고용을 연장하는 더 포괄적 개념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이달 중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고용연장 대책을 내놓는다. 내년에 노사, 민정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려 논의를 시작해 고용연장 로드맵을 만드는 게 주요 내용이다. 현재 62세인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2023년 63세,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높아지면서 한국 은퇴자는 최장 5년의 '소득 보릿고개'를 겪어야 한다. 숙련공 은퇴로 중소기업의 인력난도 가중되고 있어 정년연장의 필요성이 큰 건 사실이다.

 

  거대 여당의 지원을 받는 정부가 곧바로 법을 고쳐 정년을 연장하지 않는 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2030세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800만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늦어지면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청년 신입 채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65세에서 70세로 정년을 높인 일본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65세를 넘기는 직원들에게 기업들이 재고용, 취업 알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되 위반해도 처벌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업들이 은퇴자를 적극 고용하는 건 인력난이 심각한 데다 연공서열식 호봉제에서 직무성과급제로 임금 체계를 바꿨기 때문이다. 업무 강도, 중요도 등에 따라 고령자 임금을 크게 낮출 수 있어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60세 정년을 법제화하면서 노동계로부터 직무성과급제 도입 약속을 끌어내지 못한 걸 많은 노동 전문가들이 아쉬워한다. 그래서 현 정부가 고용연장을 추진한다면 임금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협상 테이블에 반드시 함께 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반대급부도 없이 강성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대책을 내놓는다면 노사갈등을 부추길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일자리를 86세대에 뺏긴다는 청년층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21.07.08(목) / 동아일보 / 박중현 논설위원

'칼럼베껴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로 2020의 '버터'  (0) 2021.07.09
탈레반의 귀환  (0) 2021.07.08
사무장 요양병원  (0) 2021.07.07
"바지 내릴까요"  (0) 2021.07.07
김해영의 압박면접  (0) 202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