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처음 등장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은 저금리와 집값 급등이 함께하던 시절 보편적인 투자기법이 됐다. '서울 집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고 했고, '대출은 빚이 아니라 투자'라 했다. 주택담보대출은 물론이고 신용대출, 회사 대출, 퇴직연금 등 노후자금까지 있는 대로 탈탈 털어 집 사는 데 쓸어 넣었다. 대출 상환 걱정은 없었다. 처음엔 이자만 내다가 집값 오르면 팔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고금리가 닥치면서 빚의 역습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법원에 따르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갚지 못해 임의경매로 넘어간 부동산(건물·토지·집합건물)이 지난해 13만9874건에 달했다. 2023년 보다는 30%가량 늘었고, 2022년과 비교하면 배 이상이 됐다. 집값 하락으로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문제가 됐던 2013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많다. 최근엔 압구정동, 대치동 등 서울 강남권에서도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임의경매가 늘어난 것은 2020년 이후 뜨거웠던 '영끌' 열풍의 후폭풍이다. 집을 산 후 한동안 저금리가 계속되고 집값이 올랐지만 2022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로금리의 시대가 끝나 전 세계가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국내 대출금리도 함께 올랐다. 고삐 풀린 듯 오르기만 하던 집값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대출금 부담이 커져 손절하려고 해도 거래가 위축되면서 팔기도 쉽지 않았고, 결국 경매로 넘어간 경우가 많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영끌족들 중에선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집값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조만간 미국에서 큰 폭의 금리인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대출 규제, 경기 침체에 탄핵 정국까지 겹치며 주택 시장이 다시 얼어붙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며 금리가 내려가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것도 악재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부터 5년간 낮은 수준의 고정금리를 적용받다가 올해부터 고금리의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사람들이 많아 이자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
영끌 대출의 문제는 빚에 허덕이는 매수자들의 한숨에 그치지 않는다. 대출금 상환 부담에 이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소비와 내수 침체가 더 깊어질 수 있고 금융권 부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영끌족들은 파국에 이르기 전에 적극적으로 부채 조정에 나서야 한다. 내 집 마련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영끌족들의 눈물을 반면교사 삼아 무리한 대출을 삼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빚의 무서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25.01.21(화) / 동아일보 / 김재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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