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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트럼프 4년으로 끝일까

  아돌프 히틀러란 괴물이 전간기 독일에 출현한 건 우연이었을까. 우연성을 보는 이들은 '인종말살'이란 최악의 만행을 '최종해결책'으로 포장했던 지독한 광기에 주목한다.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그 정도 비극은 없었을 거란 얘기다. 그러나 당시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히틀러를 시대의 필연적 산물로 간주하는것도 설득력 있다. 전쟁 배상금에 따른 초인플레이션, 대공황 확산 등 경제적 모순을 등에 업고 나치당은 집권했다.

 

  도널드 트럼프란 별종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트럼프 시대는 미국 경제가 해결 불가능한 모순에 봉착한 시점과 맞물린다. 부의 불균형, 제조업 전멸, 지속 불능 쌍둥이 적자 등이다. 트럼프는 혁신, 교육, 구조개혁, 사회적 타협을 통해 찬찬히 모순의 실타래를 풀기보단 단칼에 매듭을 끊고자 '관세'라는 큰 칼을 휘두른다. 가축통화국 지위를 누리려면 당연히 무역적자를 떠안아야 함에도, 그 적자를 타국에 떠넘기고 달러 패권의 특권만 향유하려는 것이다. 내정 실패를 미국 밖에 전가하는 행위다.

 

  웹툰 '송곳'을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꼽는 명대사가 있다.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노동법을 어겨도 처벌 받지 않는 세상에선 아무도 규정을 지키거나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히틀러가 폭주할 수 있었던 것도 '어, 이렇게 해도 되네'라는 자신감이 쌓이면서였다. 라인란트 재무장, 오스트리아 합병, 주데텐란트 병합에서 전혀 제지 받지 않았다. '그래도 된다'

는 생각에 한 발 더 나간 게 폴란드 침공이다.

 

  멋대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국제규범을 어기고 동맹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게 계속 통하면, 미국이 제아무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제국이라도 타락의 길을 피할 수 없다. 기축통화국이 특권만 챙기고 의무를 면제 받는다면, 전 세계인이 미국인을 위해 생산활동을 하는 '글로벌 귀족사회'와 다름없다. 횡포와 협박이 이렇게 통하면 다음 미국 대통령이 과연 '꿀통'을 순순히 내려놓을까. 사람의 광기만 볼 게 아니라 저 행패가 가능한 미국의 구조도 봐야 한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의 신뢰성도 무너지고 있다.

 

2025.04.11(금) / 한국일보 / 이영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