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손가락 탓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여름 OOO 추천' , '△△△ 솔직 리뷰' 같은 정보성 게시물을 클릭했더니 막상 별 내용은 없고 갑자기 쿠팡 앱이 실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실수로 광고를 클릭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손가락이 스치기만 해도 쿠팡 앱이 실행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뒤로 가기'를 눌러도 작동하지 않는다. 거머리를 연상시킬 정도다.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았는데 특정 앱으로 강제 이동되도록 설정된 이런 광고를 '납치 광고'라고 한다. 소비자가 의도치 않은 소비를 하도록 교묘히 온라인 화면을 꾸미는 '다크 패턴'의 일종이다.
쿠팡의 납치 광고가 유독 심각한 건 '쿠팡 파트너스'라는 마케팅 프로그램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나 홈페이지 운영자가 쿠팡 파트너로 등록한 뒤 쿠팡에서 판매되는 특정 상품의 구매 링크를 올리면 그 링크를 통해 상품이 팔릴 때마다 구매액의 3%를 수익으로 얻는다. 꼭 그 상품이 아니어도 링크를 타고 들어온 사람이 24시간 내에 쿠팡에서 물건을 사면 구매액의 3%를 벌 수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수익을 올리려면 낚시성 글이나 허위 정보로 스크롤을 내려 보게 하면서 쿠팡 앱으로 강제 전환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튜브에는 '쿠팡 파트너스 활동법'을 알려주는 영상이 수두룩하다.
온라인 쇼핑몰은 편리하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시키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 1월에 낸 관련 사례집을 보면 광고 표시가 없는 일반적인 링크를 큭릭했음에도 광고가 등장하거나, 원치 않는 광고에서 탈출하려 했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광고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78%에 달한다.
쿠팡과 수익모델이 비슷한 아마존은 납치 광고 발견 시 해당 온라인 사업자와 계약을 해지하는 등 강력한 자율 규제를 하고 있다. 소비자의 불신이 쌓이면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해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광고임을 숨기거나, 사용자가 정보를 얻고자 클릭했는데 광고로 연결되는 경우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방통위도 쿠팡의 납치 광고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쿠팡은 납치 광고가 일부 광고 파트너들의 개별적인 부정행위라고 한다. 하지만 쿠팡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를 만들어 보내주는 등 사실상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쿠팡에서 구매하도록 연결해 주는 대가로 1억5000만 원을 번 파트너도 있다고 한다. 거꾸로 계산하면 쿠팡은 50억 원어치 매출을 올렸다는 얘기다. 납치 광고를 못 하도록 과연 적극적으로 관리했을까 싶다. 약 2000만 명이 쓰는 국민 쇼핑 앱이 이런 치졸한 마케팅까지 해야 하나.
2025.06.23(월) / 동아일보 / 우경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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