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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전기요금 통합 징수' 해결되니 수신료 올려달라는 KBS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한다. 박장범 KBS 사장은 어제 열린 KBS 시청자위원회 전국대회에서 1981년 2500원으로 인상된 후 45년째 동결된 수신료 인상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KBS 내부에서는 수신료 인상 슬로건으로 '3·4·5'를 내걸었다고 한다. '3000원으로 44년 만에, 500원 인상한다'는 뜻이다. KBS의 수신료 인상요구는 2007년(4000원), 2010년(3500원), 2013년(4000원), 2021년(3840원)에 이어 다섯 번째다.

 

  수신료 인상 추진 배경엔 고질적인 경영 악화가 있다. KBS의 지난해 사업 손익 적자는 881억 원으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935억 원)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전체 수입의 49%를 차지하는 수신료를 올려 경영난을 덜어보겠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KBS 수신료 수입은 6516억 원. 수신료가 3000원으로 20% 인상되면 수신료로만 한 해 1300억 원 이상의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자구 노력 없이 준조세나 다름없는 수신료를 더 걷어 경영난을 해결하려는 계획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박 사장은 올 3월 "현재 5248명인 KBS 정원을 20% 감축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시행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역대 사장들도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감원을 공언했지만 KBS의 인건비 비중은 32%로 MBC(23%)나 SBS(16%)보다 훨씬 높다(2023년 기준). 수신료 인상이 국회 최종 승인 단계에서 번번이 무산됐던 이유다.

 

  더구나 올 4월 여당 주도로 수신료를 예전처럼 전기요금에 합쳐 내도록 방송법이 개정돼 KBS로서는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상태다. 지난 정부가 공영방송 실패에 수신료 납부 거부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며 분리 징수제를 시행했으나 다시 통합징수제로 돌아간 것. KBS로서는 이것만도 큰 혜택인데 불황국면에 수신료 인상까지 꺼내자 사내에서도 "여론 수렴 않고 성급하다"거나 '파우치 사장'의 흑역사를 언급하며 "편파 방송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에선 20년 가까이 수신료 인상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해외에선 공영방송 무용론이 제기된 지 오래다. 공영방송 의존도가 높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유료 방송에 넷플릭스, 유튜브까지 수많은 채널이 존재한다. 1만 원 넘는 넷플릭스 구독료는 기꺼이 내도 공영방송 수신료 지불의사액은 2006년 3775원에서 가장 최근 조사인 2019년엔 1667.45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일본 NHK가 수신료를 내리고 영국 BBC가 2년 후 수신료 폐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이유다. 지금은 수신료 인상이 아니라 제구실 못 하는 다수의 공영방송을 언제까지 공적 재원으로 유지해야 하나 검토할 때다.

 

2025.06.25(수) / 동아일보 /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