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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6·23 조각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 결정 배경을 두고 대통령실은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 어떤 활동과 결정을 했든 새 정부 국정 운영 방향에 보조를 맞출 것으로 생각한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쓰겠다는 인사로 해석해 달라." 멘트의 발화자는 그 유명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다. 아무리 뜯어봐도 민감한 내용은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불참 결정을 두고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등장한다. "다자외교 무대에 나가는 것보다 시급한 국내 현안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22일 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 오찬 회동의 내용에 대해선 '대통령실 관계자'가 "오찬 회동이라 격렬한 토론을 하기보단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부연했다. 짤막한 공식 브리핑 후 추가로 이어지는 백브리핑은 내용이 뭐든 모두 익명 처리되는 것이다.

 

  대통령실(청와대)발 익명 보도는 수십 년 된 관행이다. 카메라가 꺼진 뒤 실명을 가리면 좀 더 깊은 얘기를 기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취지에 언론이 동의해준 결과다. 암묵적 표기 기준도 있다. '고위 관계자'는 통상 비서실장, 정책실장, 수석비서관을 가리킨다. 비서관급은 '핵심 관계자', 행정관급은 '관계자'다. 심지어 대언론 창구인 대변인 조차도 공식 브리핑을 할 때는 대변인이지만, 비공식으로 전환되는 순간 '핵심 관계자'가 된다. 수석을 수석이라고, 비서관을 비서관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셈이다.

 

  대통령실은 24일부터 브리핑룸에 카메라 4대를 추가 설치하고 KTV로 생중계를 시작했다. 기자들의 질의 모습과 현장 상황까지 쌍방향으로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생중계가 되니 익명의 '관계자'도 없다. 브리핑하는 대통령실도, 질문하는 기자도 더는 숨을 곳이 없다. 오랜 그릇된 관행을 깨는 의미 있는 변화다. 지금이야 '허니문' 기간이지만 언론과 각을 세울 일이 생기면 슬그머니 카메라를 끄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격적 질문도 마다하면 안 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야심 찼던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도 언론과의 마찰로 중단됐다.

 

2025.06.26(목) / 한국일보 / 이영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