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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부부 동반 치매 급증, 배우자가 치매면 나도 ···

  동반 치매를 앓는 노부모를 간병하는 아들이 찍어 올린 영상속의 장면이다. 식사를 하던 부인이 "재 누구 아들이고?"라고 남편에게 묻는다. "모르지. 니 아들인지. 나 몰라." 마주 앉은 남편이 태연히 대답한다. 그러자 아내는 "난 모르지. 아들이 괜찮아. 자상하고"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본다. 기억을 잃은 나는 내가 맞을까.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어도 사랑은 남을까. 치매는 '장수의 저주'라더니 아들을 잊은 엄마의 텅 빈 눈동자가 그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가족 중 두 번째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가 5327명으로 2019년(2857명)에 비해 86% 증가했다. 치매가 노인성 질환임을 감안하면, 치매를 같이 앓는 노부부가 대략 5327쌍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의 1% 정도로 추산된다. 병원에 가서 진단과 치료를 받는 인원만 집계된 것이니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유타주립대 연구팀이 인근 지역 65세 이상 2442명(부부 1221쌍)을 9년간 추적 조사했더니 배우자가 치매 진단을 받을 경우 치매 발병 위험이 평균 6배나 높아졌다. 치매인 아내를 둔 남편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는 남성보다 11.9배 높았고, 치매인 남편을 둔 아내는 그 비율이 3.7배 높았다. 다만 간병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인지 기능 저하를 불렀는지,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공유했기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국내 연구서도 부부가 동반으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보고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배우자가 치매 환자인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약 2배 높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부부의 생활 습관 때문이었다. 부부 동반 치매 환자들은 흡연 과음 비만 우울증 신체활동 등 치매 위험 인자를 공유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치매 발병 위험이 컸는데 간병으로 신체 활동이 줄고 우울증까지 앓다 보면 쉽게 치매에 걸린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부부 동반 치매 환자들은 처음에는 생계 수단부터 잃었고 차츰 식사나 병원 통원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치매는 인지 기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성격이 난폭해지는 경우도 많아서 부부가 잦은 싸움으로 동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요즘같이 자식 귀한 시대에 간병을 맡아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스스로 복잡한 복지 제도 신청도 불가능해 사실상 '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이들을 직접 찾아가 돌봄 대상자를 발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가족이 무너지는 슬픔까지 겪도록 해서야 되겠나.

 

2025.07.01(화) / 동아일보 / 우경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