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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의 휠체어 모독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인권'은 '타인의 필요와 고통을 이해하기에 나온 발명품' 중 하나로 휠체어를 소개했다. 통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국황 펠리페 2세를 위해 16세기 스페인에서 제작된 바퀴 달린 의자가 최초의 휠체어다. 걷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휠체어는 자유이고 존엄이라는 데 세상은 눈을 떴다. 17세기에 장애인이 스스로 몰 수 있는 휠체어가 개발되고 1930년대에 접이식 휠체어가 나왔다.

 

  한국엔 1960년대에 들어왔다. 6·25전쟁 부상자들을 위해서였다. 휠체어는 종종 모독당했다. "난처해지면 한국 회장님들은 휠체어를 탄다." 200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사 제목이다. 비리 혐의 재벌 총수들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타나 솜방망이 처벌을 이끌어 낸 것을 비꼬았다. 같은 해 CBS·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휠체어 출두를 보면 더 괘씸한 생각이 든다"는 답변은 75.8%, "동정심이 든다"는 응답은 7.7%였다. 상상력 부재 탓인지, 비리 기업인·정치인의 휠체어 애용은 계속됐다. 수사가 끝나면 제 발로 걷는 권력자를 보며 사람들은 자조했다. "판사, 검사가 명의냐!"

 

  올해 들어 가장 주목받은 휠체어 탑승자는 김건희 여사일 것이다. 우울증으로 입원했다 퇴원하는 날 병실부터 차량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갑자기 기력이 솟았는지, 차량 앞에서 두 발로 서더니 휠체어를 발로 치웠다. 휠체어를 민 건 윤석열 전 대통령. 특검에 출석하는 모습은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하더니, 퇴원하는 모습을 기자와 유튜버가 밀착 촬영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동정심 유발 술책"(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란 비판을 샀다.

 

  장애인은 '쇼'가 아닌 '생존'을 위해 휠체어를 탄다. 계단과 문턱 앞에서 휠체어는 멈춘다. 자유와 존엄도 멈춘다. 휠체어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점거 시위를 하는 이유다. 대통령 시절 윤 전 대톨령은 '"소수자라고 봐줄 수 없다"며 전장연 시위 엄정 대응을 주문했다. 휠체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냉대한 그가 휠체어를 밀고 등장한 건 아이러니다.

 

2025.07.01(화) / 한국일보 / 최문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