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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Great Replacement)

  '히스패닉이 내가 사랑하는 텍사스주 정부와 지방정부를 장악할 것이다'

  3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한 대형 소핑몰에서 총기 난사로 20명을 숨지게 한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21)는 범행 전 이런 내용의 선언문을 올렸다. 히스패닉 때문에 텍사스가 민주당 텃밭이 될 것이며, 자신의 공격은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대적 교체(The Great Replacement)'를 언급했다.


  '대대적 교체'는 2011년 프랑스의 작가 르노 카뮈(73)가 쓴 책(Le Grand Remplacement)에서 나왔다. 기존 토착 인구가 이주민에 의해 교체되면서 발생하는 인종 소멸 공포를 담았는데, 21세기 서구의 반(反)이민 · 분리주의 정서에 불을 붙인 것은 물론 유럽의 극우정치인들에게 사상적 기반을 제시했다. 3월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 테러 사건의 범인도 범행 전 같은 제목의 선언문을 올렸다. 그는 '출생률 탓'이라고 강조하며 "몇백만 명이 국경을 넘어와 백인을 대체한다"고 했다. 2017년 8월 미국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유혈 참사를 일으킨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너희는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You will not replace us)"고 외쳤다.


  크루시어스의 트위터에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 트럼프의 정책을 칭송하는 글이 많았다고 한다. 트럼프는 그의 테러를 비난했지만, 최근 실제 언행은 달랐다. 트럼프는 유색인종 출신 민주당 여성 초선의원 4명에게 "원래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고, 흑인 인권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에 대해 "사기꾼이고 백인과 경찰을 싫어한다"고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의 대표 저자인 밴디 리 예일대 의과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취임 후 미국에서 증오범죄와 학교폭력이 늘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는 두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대통령이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며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낸 제임스 길리건 등 정신의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스트롱맨들의 출현과 반이민 ·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가 느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세계화가 고도화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는데, 이런 불만을 저급한 지도자는 사회적 약자나 이방인 등 외부로 돌리고, 불만계층이 이를 폭력이나 테러의 이유로 삼는 악순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이런 지지층을 결집시켜 정치 생명을 연장한다. '진정한' 대대적 교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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