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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美 출생시민권

  '중국인 임산부들은 해외여행을 온 것처럼 하와이로 입국한 뒤 로스앤젤레스(LA)로 이동했다. 입국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헐렁한 옷을 입어 부른 배를 감췄다. 머물 숙소로는 이리 외운 대로 와이키키 해변 5성급 호텔인 트럼프 호텔을 콕 집어 답했다.' 올해 1월 미국 LA 연방검찰은 중국인 원정출산 알선업체 대표 등 20명을 비자 사기와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했는데, 이 기소장에 쓰인 수법이다. 이 업체들은 미국 시민권 획득을 위한 원정출산 상품을 1인당 4만~8만 달러를 받고 팔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국경을 넘어와 아기를 낳으면 '축하해요, 이제 아기는 미국 시민이네'라고 말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솔직히 웃기는 일"이라며 출생시민권 제도 폐지를 언급했다. 미국에 불법 이민자 부모나 원정출산을 온 부모가 낳은 출생아 수가 연간 30만 명 수준이다. 이 가운데 원정출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1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출생시민권 폐지는 '캐러밴'(중남미3개국 이민자)을 막기 위한 반(反)이민정책이지만 중국 한국 등에서 온 부유층들이 원정출산을 통해 학업 · 취업에서 혜택을 누리는 것도 겨냥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해 10월 인터넷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한 미국 시민이 되고 85년 동안 모든 편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끝낼 때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법 이주의 닻을 내리는 아기들(앵커 베이비 · anchor babies)"이라고 했다.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이 부여되고 나중에 부모나 형제를 초청해 연쇄 이민이 이뤄진다는 점을 조롱한 것이다. 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미 상원을 장악했다. 사실상 '트럼프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었다.


  출생시민권 폐지는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한 미 수정헌법 제14조와 배치된다. 이른바 '속지주의'는 1868년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에서 해방된 흑인들에게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비준됐다. 이후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부모를 둔 이민자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관할권'을 물리적인 영토가 아니라 합법적인 체류를 기준으로 보는 극소수 의견도 있긴 하지만 출생시민권을 폐지하려면 먼저 수정헌법 제14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대선을 앞둔 정치적 행위라는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그의 반이민 구호가 통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인심이 사나워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2019.08.23(금) / 동아일보 / 우경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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