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1993년 창업한 뒤 4년간 마음고생이 심했다. 미래 컴퓨팅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신제품을 개발했다고 자부했는데 시장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엔비디아의 GPU(그래픽 처리 칩) 는 고속병력연산 기술을 적용해 CPU의 한계를 넘어섰다. 화려한 영상을 연출해야 하는 게임에 특화된 비메모리 반도체로 성장 잠재력이 매우 컸다. 그와 뜻을 같이 한 공동 창업자는 물론 반도체 전문가들도 젠슨 황의 사업 비전에 공감했다. 그러나 그가 놓치고 있는 대목이 있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호환성이 떨어지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투자받은 돈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무렵 알았다. 다행히 생사 고비에서 잭팟이 터졌다. 창업 4년째인 1997년 드디어 히트 상품이 나왔던 것이다. 기사회생한 그는 실패를 정직하게 돌아보며 다음 결론에 이르렀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독창적인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확장성이 있어야 한다." 그의 깨달음은 엔비디아가 GPU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영국의 ARM을 인수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수 금액이 400억달러에 달하지만 성장을 위해 충분히 베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ARM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다.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완료하면 컴퓨팅과 모바일 산업 생태계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각 분야의 정보기술(IT) 강자들도 엔비디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다. '엔비디아 천하'는 지난 8월 이미 예고됐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인텔을 추월하며 반도체 산업의 지각변동을 알렸다. ARM 인수 소식이 전해진 14일에도 엔비디아 주가는 5.8%나 급등했다.
2020.09.16(수) / 매일경제 /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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