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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껴쓰기

'집값 정점론'

  지난달 서울 2분위(하위 20~40%)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KB부동산 기준 8억7104만 원으로 전달보다 0.92% 떨어졌다. 2019년 10월 이후 2년 1개월 만의 하락이다. 한 단계 위인 3분위(하위 40~60%) 아파트 값도 11억70만 원으로 0.05% 내렸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팔겠다'는 사람이 '사겠다'는 사람보다 많은 상황도 2주 연속 이어지고 있다. '집값 정점론'이 점차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구)'에 몰려 있는 서울 중저가 아파트값 하락은 시장 흐름이 바뀐다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집값은 오를 때 서울 강남지역 등의 고가 아파트가 가격을 이끌고, 내릴 때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아파트가 먼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수도권 전체 아파트를 가격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중위 아파트' 매매가가 지난달 7억7387만 원으로 10월보다 2.3% 내린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지난달 서울 최하위 20% 아파트 매매가는 5억7049만 원으로 전달보다 1.35% 올랐다. 매매가 6억 원 이하로 제한된 서민용 고정금리 대출상품인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어서 청년, 서민층의 막판 매수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4분위(상위 20~40%), 5분위(최상위 20%) 고가 아파트값이 여전히 오르는 건 매물이 부족한 영향이 크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의 '하우스 푸어(집만 가진 가난한 사람)'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말 노 장관은 "집값이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일부 강남지역 아파트값이 최대 40%까지 떨어졌던 2012, 2013년의 집값 폭락을 상기시켰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간 가격이 떨어져 손해 볼 수 있으니 추격 매수를 자제하라는 경고였다.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 다르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당시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25%까지 올렸지만 이번엔 1%대 후반에서 멈출 공산이 크다. 또 그때는 아파트 공급이 몰리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했고 이명박 정부가 강남·서초구에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한 '반값 아파트' 때문에 "집 살 필요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됐다.

 

  결국 아파트값 하락을 추세로 굳히려면 서두르지 않아도 내 집 마련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믿음을 실수요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정부가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확대를 서두르고 있지만 실제 공급은 일러야 2024~2025년에나 이뤄진다. 차기 정부가 초기부터 민간 주택공급을 확대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간신히 시작된 집값 안정의 기회마저 놓칠 수 있다.

 

2021.12.03(금) / 동아일보 / 박중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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