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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종목 무더기 하한가 ···'천국의 계단株' 아닌 '주가조작'?

  모든 주식 투자자들은 자신이 산 종목이 '천국의 계단주(株)'가 되어주길 꿈꾼다. 우(右)상향 곡선에 올라타 멈추는 일 없이 장기간 고공 행진하는 종목을 증권가에선 이렇게 부른다. 2020년 초부터 3년 넘게 코스피 상장사인 방림·동일산업·만호제강·대한방직과 코스닥 상장사인 동일금속은 이런 주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주 수요일 정오를 전후해 이들 5개 종목은 별다른 이유 없이 동시에 하한가까지 곧두박질쳐 50일 전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의 악몽을 되살렸다.

 

  동반 폭락하기 전까지 만호제강은 2020년 초에 비해 315%, 동일산업이 285% 오르는 등 5종목 주가는 3년 반 전에 비해 평균 252% 상승했다. 회사가 보유한 자산의 규모에 비해 주가가 낮다는 점, 실적 개선 등 뚜렷한 호재가 없는데도 장기간 상승한 중소형주라는 점, 시장에서 거래되는 양이 적다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SG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를 주도한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 일당이 주가 조작의 표적으로 삼았던 종목들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5개 종목 중 몇몇은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 B투자연구소가 집중 추천해온 종목이어서 이곳 운영자 강모 씨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과거 소액주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강 씨는 해당 주식들이 저평가됐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려 왔다. 강 씨는 "나와 가족도 깡통계좌가 됐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어제 그의 출국을 금지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들 회사의 주가 흐름 이상을 포착한 증권사들이 신용대출 연장을 거절하자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면서 주가가 폭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씨는 시세 조종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4억 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증시 불공절 거래 행위로 기소된 사건 중 61.5%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범률도 28%나 됐다. 10명 중 6명은 실형을 피하고, 3명 중 1명은 다시 주가 조작에 나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주가 조작으로 들통난 이익의 3~4배에 불과한 '솜방망이 벌금'의 영향도 있다. 당국에 걸리지 않은 이익을 생각하면 '한 번 감옥에 갔다 와도 남는 장사'란 말이 나온다.

 

  그제 불과 28분 만에 증발한 5개 종목의 시가총액이 5066억 원이다. 이런 후진국형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외국 투자가들의 한국증시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투자 의지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가 조작 범죄자를 시장에서 장기간 격리시키고, 한 번만 걸려도 패가망신하도록 이익을 환수하는 법안들이 국회에 이미 발의돼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천국의 계단에 오르는 대신에 날개를 잃고 절망 속으로 추락하는 개미 투자자만 더 늘어나게 된다.

 

2023.06.16(금) / 동아일보 / 박중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