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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없어진 지구당, 뜬금없는 부활론의 허실

  20년 전 사라진 과거 정치문화인 지구당이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 22대 국회 첫날인 지난달 30일 여야에서 각각 지구당 부활과 관련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주목할 점은 전현직 당 대표를 비롯해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이 논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불을 붙인 데 이어 나경원 안철수 윤상현 의원 등이 찬성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구당 부활을 거론하는 속내는 제각각이지만 주요 명분은 현역 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 형평성 문제다. 현역과 달리 원외 인사들은 선거 기간이 아니면 사무실을 열고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이런 탓에 총선 때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명망가들이 낙하산 공천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청년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등을 위해 원외 인사들에게도 활동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각 당엔 '당협위원장'(국민의힘) 또는 '지역위원장'(민주당)이라는 직책이 있다. 각 선거구를 관리하는 지역 책임자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원외 위원장들은 변호사 사무실을 지구당 사무실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위원장들은 OO연구소, OO학교와 같은 간판을 내걸고 사무실을 운영하는 편법 사례가 있다. 이마저도 어려운 이들은 당협위원장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4년 동안 돌아다니며 유권자들을 만난다. 합법적인 사무소, 여기에 후원금과 중앙당의 인력·자금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이들에겐 엄청난 힘이 된다.

 

  지구당이 2004년 폐지된 이유는 불법 정치자금 때문이다. 사무실을 열면 임차료와 인건비 등으로 월 1000만 원 이상의 운영비가 든다고 한다. 연 1억2000만 원, 254개 지역구로 확대하면 연 300억 원이 넘는 돈이다. 이런 액수도 외부에 드러난 것일 뿐 실제로는 조직동원비 등으로 더 많은 금액이 소요된다는 것이 정가의 경험담이다. 그나마 현역의 경우엔 후원금이 있고, 국회 보좌진에게 사무실 운영을 맡겨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원외 위원장은 사비를 털어야 한다. 이 때문에 시의원, 구의원들이 사무실 운영비를 갹출하거나 지역 내 사업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건네는 경우도 많았다.

 

  현역과 원외 인사, 정치 신인 사이에 놓인 불공정한 장벽은 해소돼야 한다. 하지만 그 대안이 지구당 부활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지역 내 또 다른 정치 카르텔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원외 위원장에게만 사무실과 후원금을 허용한다면 당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정치 신인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아무런 논의도 없다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불쑥 던질 이슈는 아니란 얘기다.

 

2024.06.04(화) / 동아일보 / 길진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