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오면 독일과 러시아 국민은 해묵은 구원을 떠올린다. 2차대전의 사실상 개전을 의미했던 바르바로사 작전(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개시일(1941년 6월 22일)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어서다. 양국은 전후 에너지 최대 교역국으로 관계를 정상화하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독일인이 6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교류가 활발한 사이가 됐지만 오랜 앙숙이라는 굴레를 털어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에서 고조된 '재무장' 물결 속에 늘 독일의 존재가 가장 두드러진 이유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스파이더웹' 작전 성공 이후 러시아의 보복 공격 의지가 확고해지고 이를 상쇄할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반전 의지는 수그러지면서 독일 내 재무장, 전쟁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달 들어 연방의회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반적 의무복무제 도입을 요구한다'며 징병제 재도입을 촉구했고, 국방장관은 현역병을 30% 증원하겠다는 말로 맞장구를 쳤다. 심지어 100만 명을 수용할 방공호 확충에 나섰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독일의 전쟁 대비 수위가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 러시아 철도청으로부터 최근 날아든 소식이 국제사회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코로나 발발 이후 5년 넘게 끊겼던 모스크바와 평양을 잇는 직통 철도가 17일부터 재개된다는 발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돈독해진 러시아와 북한의 물적, 군사적 교류가 보다 활기를 띠게 된다는 신호탄을 의미한 만큼, 독일 등 유럽이 느끼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실은 우리에게 더 큰 골칫거리다. 1만 km나 떨어진 두 도시 동맹이 한층 뜨거워진다면 전쟁터에서 함께 피흘린 데 대한 보답과 다름없는 러시아제 무기들과 각종 기술이 평양으로 안정되게 공급될 길 또한 넓어진 셈이다. 남북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던 2018년 모스크바와 한반도를 잇는 철도에 대한 구상은 한때 현실이 될 뻔했다. 평화를 실어나를 수 있었던 그 철도가 반쪽만 열린 채 전운의 상징이 된다니, 역사는 냉혹하기만 하다.
2025.06.12(목) / 한국일보 / 양홍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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